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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강(鶴岡)이란 이름에 대한 유래
작성자 박후언 이메일
작성일 2015/12/23 15:12
조회 407

*구동과 거북뫼 *

광주시 남구 구동(龜洞)은 산의 형상이 거북(龜)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거북형국의 언덕(龜岡)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광주향교에서 장의(掌儀)를 맡고 있는 나창순(71)옹은 선인들로부터 현재 광주공원과 광주향교의 터가 된 산은 거북의 형국이기 때문에 ‘구강(龜岡)’이라 했고, ‘龜岡’이 있는 광주천(예전에는 鳥灘江)변은 이 산의 기운을 받아 부자가 많이 나는 형국이며, 이곳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은 이곳을 떠나야 하며, 만일 부자가 되고서도 이곳을 떠나지 아니할 경우에는 거북이가 꼬리를 흔들기 때문에 얼마 후 재물을 모두 잃는다 하였다. 때문에 옛 선인들은 거북이가 꼬리를 흔들지 못하도록 이곳에 무거운 돌탑을 세워 地氣를 눌렀다 한다. 광주공원과 구동체육관 사잇길을 따라 공원 위쪽 사구동으로 올라가면 길옆에 서 있는 오래된 석탑이 바로 거북의 꼬리를 누르기 위한 돌탑이라 한다.
아무튼 전설은 그럴 듯하지만 이런 전설은 믿을 수 없다. ‘龜洞’이란 명칭은 1935년부터 불린 이름며, 그 이전의 마을 이름이 기록된 『호구총수』 지명자료에서 광주공원 부근의 마을명에 ‘龜’자가 들어간 지명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광주는 1935년 부로 승격되면서 광산군과 분리되었다. 이때 ‘성안(城內)’ 지역인 광주부는 ‘성밖(城外)’인 광산군에 비해 영역이 매우 좁았다. 때문에 광산군의 지한면 4개리와, 서방면의 5개리, 효천면의 교사 양림 봉선 벽도 주월리를 광주에 편입하게 된다. 이 때 교사리를 갈라서 鄕社里와, 龜坊里로 나누게 되었고 1949년 龜坊里를 龜洞으로 개편하며 ‘龜洞’이란 지명이 생긴 것이다. 
이는 지금 ‘학강초등학교’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鶴岡(학강)이란 이름도 풍수에서는 학형국을 한 산이기 때문에 명명된 지명이라 하지만 ‘龜岡’이나 ‘鶴岡’은 모두 광주천의 물줄기가 갈라지고 합류되는 지리적 특징과 관련되어 명명된 지명이라 생각한다. 
출처 : 우리고장현장체험 사이트(http://www.gedu.net/munhwa/m3/m3_1_2.jsp)

지금의 학강초등학교가 있는 양림동 22번지일대는 '원방림'이라 했다. 이장우, 최승효 전통가옥이 있는 곳만을 '양림'이라 했다. 양림산 중턱 선교사들이 자리 잡은 곳은 공동묘지 겸 전염병으로 죽은 아이들 풍장터였다.
-김정호의 광주 역사산책20. 양림동 문화마을(Ⅱ) -중에서

   방림동 얘기의 진짜 발원지는 따로 있었는데 ‘원방림’마을이 그곳이다.
제1순환도로 혹은 광주의 자매결연도시인 타이완의 타이난을 기념하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대남로(臺南路) 북쪽,
언덕에 자리 잡은 동네가 원방림이다. 원방림이 마주한 곳, 지금의 명지맨션 자리도 예전에는 산이었다. 저 목포의 유명한 산과 이름이 같은 유달산이었다.물론 목포의 유달산만큼 유명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일대 사람들에겐 참 의미 있는 공간이었을 터. 
  한편, 원방림과 유달산 사이는 온통 밋밋한 들판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밋밋들, 맷맷들이라 했다. 하지만 토박이들은 그저 지형이 밋밋해서 그런 이름이 생겨났다고 믿지 않았다. 그들이 오래전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로 이곳은 원래 바다였단다. 그리고 미역을 땄던 이유로 이곳을 밋밋들이라 했다는 것. 생뚱맞고 과장된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런 신화 같은 얘기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지금의 밋밋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밋밋하게 보인다. 
  어떻든 이런 밋밋들에 마치 바다의 등대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 있었다. 방림초교 근처 광명아파트가 들어선 고지대에는 원래 크고 오래된 버드나무가 있었다. 나무는 어른들이 한 아름으로 채 껴안을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컸다고 한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직전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물론 지금은 베어지고 없다. 옛 나무만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옛집들도 없어진 게 많다. 원방림 근처에는 예전 제중병원 의사였고 미군정 때 전남도지사를 지냈던 최영욱이 살던 집이 있었다. 과수원을 끼고 세워진 이 집은 일제시대엔 드물게 실내에 수도가 들어왔던 집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옛 지도를 들고 가도 그 장소를 짚어내기 어렵게 됐다.
조광철 <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광주드림'

양림동
*동 연혁*
양림동은 사직산과 양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동남사면에 자리잡은 전통 주거지역이다. 일제시대에 선교사가 들어와 여학교와 병원을 개설하여 세칭 서양촌으로 불려졌다. 동명의 유래는 버드나무 숲으로 덮여 있는 마을이라 해서 양촌과 유림을 합해 양림이라 칭했다. 양림동은 동쪽으로 광주천을 경계로 동구 금동, 서쪽으로 백운동, 남쪽으로 방림동, 북쪽으로 사직동과 접해 있다. 양림동의 연혁을 살펴보면 1914년 4월 1일 부동방면의 방림리, 원지리, 신사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해 효천면 양지리가 되었다. 당시 이 지역에는 「강번」, 「뒷동산」,「흙구뎅이」란 마을이 있었다. 1935년 광주읍이 광주부로 승격되면서 광주부 양림정이 됐으며, 1946년 양림1, 2구로 분동하여 양림1구를 지석동, 양림2구를 양학동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1947년 8월 15일 지석동과 양학동을 합쳐 양림동으로 개칭하고, 1961년 3월 10일 광주시 동부출장소의 관할이 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동구 관할이 되었다. 1980년 4월 1일에 다시 서구 관할로 편입된 후 1995년 3월 1일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남구로 분구 되었으며 2003년 11월 10일 동간 경계조정으로 방림1동에서 관할하던 대남로 북쪽의 방림동 지역을 편입하였다.
*지역특성*
지역적 특색으로는 6개의 대형교회가 소재하고 있어 동민의 약 가 교인으로 종교촌의 성격을 띄고 있고, 학강초등학교등 5개교가 있어 학교 밀도가 타지역에 비하여 높다.
-시청 누리집/남구 양림동 소개자료- 중에서


광주천과 양림동
-. 1943년 이전에는 광주학강초, 양림휴먼시아 등 이 주면 일대가 천이었다. 양림5거리~양림파출소에 이르는 곳에 지류가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양림천’이라 불렀다. 양림동 앞에는 너른 모래톱이 있었는데 이를 ‘양림전’이라 불렀다. 광주학강초는 1943년에 세워졌는데, 그 이전에는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었다.
-. 전대 응급실 자리에도 너른 백사장이 있었다. 이를 ‘묵은바탕’이라 불렀다. 광주에서 야구를 처음 시작한 곳도 이곳이고, 여성들이 모여 처음으로 체육행사를 했던 곳도 이 곳이다. 1948년에는 해방기념행사도 이 곳에서 개최되었었고, 지리산 빨치산을 수용했던 중앙포로수용소도 있었다.

출처 :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8Gde&fldid=6CF7&datanum=677&openArticle=true&docid=18Gde6CF7677200909050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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